개성과 표현
일상적인 표현들로 이루어진 글은 이해하기에 무난하지만 특별한 인상을 남기지 못한다. 물론 적절한 단어를 선택하고 문장 규범에 맞추어 쓰는 일만 해도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글쓴이만의 개성적인 표현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금세 잊힐 수도 있는 밋밋한 글이 될 수 있다. '고향'을 소재로 쓴 다음 글을 보자.
나의 고향은 강원도 산골이다. 강원도 춘천군 신남면 증리라는 곳으로, 떡시루 모양 같다고 해서 일명 '실레'라고 한다. 사방이 산으로 막혀 있고, 집들은 대개 초가로 50호 정도도 안 되는 작은 마을이다. 그러나 풍경만은 빼어나서 산에는 특이한 꽃과 풀들이 천지로 피고 약수도 일품이며 꾀꼬리 소리도 좋다.
위의 글은 고향에 대한 정보와 마을에 대한 객관적인 묘사도 나오지만 너무 평범해서 도무지 읽는 재미가 나지 않는다. 어느 회사에 입사하려고 내는 자기소개서에 들어가면 딱 좋은 글이지 필자의 개성적인 문체가 느껴지지 않는다. '실레'라는 고유명사를 빼고 나면 그저 어디라도 좋을 옛날의 산골 풍경이기 때문이다. 이 글을 다음 글과 비교하여 읽어 보자.
나의 고향은 저 강원도 산골이다. 춘천읍에서 한 이십 리가량 산을 끼고 꼬불꼬불 돌아 들어가면 내닫는 조그마한 마을이다. 앞뒤좌우에 굵직굵직한 산들이 빽 둘러섰고 그 속에 묻힌 아늑한 마을이다. 그 산에 묻힌 모양이 마치 움푹한 떡시루 같다 하여 동명을 실레라 부른다. 집이라야 대개 쓰러질 듯한 헌 초가요, 그나마도 50호밖에 못 되는 말하자면 아주 빈약한 촌락이다. 그러나 산천의 풍경으로 따지면 하나 흠잡을 데 없는 귀여운 전원이다. 산에는 기화이초로 바닥을 틀었고, 여기저기에 쫄쫄거리며 내솟는 약수도 맑고 그리고 우리의 머리 위에서 골골거리며 까치와 시비를 하는 노란 꾀꼬리도 좋다. 「김유정, 5월의 산골짜기」
김유정이 쓴 위의 글은 처음부터 분위기가 다르다. '저 강원도 산골짜기'라는 표현에서 지시어인 '저'의 기능에 유의해 보자. 앞의 글에서는 필자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매우 객관적으로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글에서는 '저 강원도 산골'이라고 함으로써 필자가 아주 먼 곳에 있음을 드러낸다. 게다가 이 글을 읽노라면 필자의 안내대로 독자가 고향으로 따라 들어가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된다. 산간지방인 강원도 춘천읍에서 '이십 리'를 그것도 산을 '끼고', '꼬불꼬불', '돌아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강원도 산골'이라고 할 때는 진부하게 느껴지던 것이 여기에서는 생동감 있게 그려진다.
그뿐 아니다. 첫 단락의 문장을 연이어서 읽어 보면. "저 강원도 산골이다", "내닫는 조그만 마을이다", " 그 속에 묻힌 아늑한 마을이다", "아주 빈약한 촌락이다"에서 '산골이다. 마을이다, 촌락이다'가 반복되면서 리듬감을 준다. 기계적으로 반복하여 쓰면 단조롭고 또 딱딱해질 우려도 있지만, 이 정도의 배치만으로도 훌륭한 리듬이 생긴다. 게다가 작가의 개성을 드러내 주는 장치도 곳곳에서 발견된다. "기화이초로 바닥을 틀"었다라는 표현, 또 꾀꼬리가 "골골거리며 까치와 시비를 하"는 것으로 그려 내는 대목이 그러하다.
그렇다며 이러한 개성적인 표현은 어떻게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말 그대로 자기만의 표현을 찾아내는 것이니 개성적 표현을 만들어 내는 데 어떤 모범답안이 있을 리는 없다. 하지만 독창적인 문학 세계를 보여 준 작가들의 충고와 글쓰기 방식에서 참신하고 힘 있는 글을 만들어 내기 위한 방법을 찾아볼 수는 있을 것이다.
단어의 발견, 혹은 새로운 활용
적절한 단어를 찾아 쓰는 것만으로도 글쓰기는 반쯤 성공했다 할 수 있다. 단어 하나로 좀 더 생생한 느낌을 전달하고 개성도 살렸다면 더할 나위 없다. 아무리 많은 단어를 알고 있다 하더라도 적절하고 참신하게 활용하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위에서 예를 든 김유정의 글에 나타내는 개성 중 하나는 토속어의 감칠맛에 있다. 그는 고향 마을 사람들이 쓰는 방언을 잘 살려 씀으로써 개성 있는 문체를 만들어 냈다고 평가된다. 소설가 김소진은 국어대사전을 베껴 가면서 사라져 가는 우리말을 찾아 소설에 살려 씀으로써 독특한 글을 쓸 수 있었다고 한다. 그의 소설 <쥐잡기>의 첫 몇 단락만 읽어도 "꼭뒤를 지르듯", "수꿀한 생각이 들어", "우두망찰 맥손을 풀었던", "양가슴을 쓰리게 부벼대며", "겅성드믓한 대머리를 인 채 움펑 꺼져 대꾼한 눈자위로 방 안을 내려다보고 있는"같이 예사롭지 않은 표현을 찾아볼 수 있다. 이 표현들은 낯설지만 맥락 속에서 충분히 이해가 될 만한 것으로 읽는 맛을 더해 준다. 이처럼 작가들은 평소에 새로운 단어를 익히고 수집하여 자기만의 사전을 만들어 두기도 한다. 생동감 있고 개성적인 표현은 이와 같은 노력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다.
소설가 이외수의 단어 수집 요령은 독특하다. 그는 감각과 속성을 중심으로 단어를 수집, 정리하고 이를 바탕으로 어떤 표현을 할 수 있는지를 다음처럼 제시하고 있다. 「이외수, 글쓰기의 공중부양」
불의속성
뜨겁다. 어둠을 밝힌다. 대개 붉은색이다. 사물을 태운다. 따뜻하다. 모든 것을 잃게 만들기도 한다. 데이면 상처를 입거나 목숨을 잃는다. 아름답다. 또는 무섭다. 음식을 익힌다. 물에 약하다. 욕망으로 대변되기도 한다. 불은 재를 만든다.
불의 속성을 염두에 둔 의인화된 표현
성난 불은 잔인하다. 격정적인 불이 나를 덮친다. 불이 물 한 대야를 얻어맞고 정신을 잃는다. 불은 재를 낳고 죽는다. 불은 바람의 친구이다. 불이 혀를 날름거리면서 나무를 집어삼킨다. 불이 너울너울 춤을 춘다. 숯 덩어리가 눈을 부라리고 있다. 불이 집 한 채를 순식간에 집어삼켰다. 불은 잡식성이다. 불은 포만감을 모른다. 불이 가스를 마시고 행패를 부린다. 불이 갑자기 쏟아진 소나기에 질식해 버렸다.
이외수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단어가 어떤 속성을 지니는지를 기록해 둔 후, 이를 바탕으로 상상하여 새로운 표현을 만들어 냈다. 위에서 예를 든 것처럼 '화재가 난 광경을 불이 집어삼키는 것'으로 바꾸어 쓰고 이어 "불은 잡식성이다", "포만감을 모른다"라고 쓰고 있다. 불을 인간과 같은 주체성을 지닌 존재로 상상함으로써 상투적인 표현을 벗어나 새롭게 활용한 것이다. 평소에 이 같은 훈련을 해 둔다면 글의 한 대목을 멋지게 장식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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