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적 글쓰기
성찰이란 자기의 마음을 반성하고 살피는 것으로 개인에서 세계로 나가는 통로가 된다. 성찰적 글쓰기는 자기와 자기를 둘러싼 삶의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기 위한 가장 높은 차원의 사유 과정이자, 자아를 통합하고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유용한 방법이다. 성찰의 성격을 띠는 글쓰기는 지극히 사적 기록인 일기부터 특정인과의 소통을 염두에 둔 편지글, 그리고 공적 소통으로서의 자전적 에세이나 자기소개의 글 등을 들 수 있다.
사적인 기록, 일기
일상에서 체험하고 느낀 갖가지 것을 성찰하고 자유롭게 정리해 내는 글쓰기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친숙한 글쓰기 방식은 일기이다. 일기는 그날그날 생긴 일이나 감상을 날짜에 따라서 적은 글이다. 과거에는 그저 비망록 내지 공식적인 코멘터리나 일지 정도로 유지되던 것이 근대적 자아가 싹트기 시작하고 문자의 보급이 확산되면서 일기가 지금과 같은 대중적 글쓰기 방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일기는 본래 개인적인 기록으로서, 공개하지 않고 자신만의 내밀한 것을 사실대로 기록하는 것에 의미가 있다. 하지만 치밀한 관찰과 특별한 사건에 대한 진실된 기록은 비록 사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사회적으로 또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보통 공개될 것을 염두에 둔 자서전이나 회상록, 자전적 수필 등에 비해 일기는 진실성 면에서 앞서고, 도 훨씬 흥미로운 데가 있다. 죽음 직전까지 기록을 계속한 남극탐험가 스콧의 일지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인간의 용기를 보여 주는 기록으로 매우 감동적이다. 유대인 학살을 피해 2년이 넘는 은둔생활을 하면서 쓴 안네 프랑크의 일기는 전쟁과 인종주의의 참혹함에 대한 기록일 뿐 아니라 어린 소녀의 감성과 성장 과정을 쓴 서사로서도 의미가 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는 일상생활에 대한 시적 기록과 동료 친척과의 왕래, 수군통제에 관한 비책 등 중요한 기사가 들어 있어서 역사적 가치가 있는 글이다. 또한 싸움터에 나간 장수로서의 면면뿐 아니라 자신과 자기 가족, 주변을 두루 살피고 삶을 반추하는 이순신의 인간적 면모도 보여 준다. 이처럼 일기는 개인적인 기록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후세의 사람들이 한 시대를 이해할 수 있는 자료가 될 수 있다.
특정인과의 소통, 편지
일기가 그렇듯이 개인적인 편지글이라고 하더라도 공감할 만한 성찰을 담고 있을 때 사적인 관계를 넘어 공감을 자아낼 수 있다.
형수님께
지난 달 하순에 저희 서화반이 이사를 하였습니다. 5, 6년 동안 작업장으로 사용해 왔던 강당 옆 계단으로부터 열세 평짜리 큰 방으로 옮겨왔습니다. 사글세를 살다가 전세를 얻어 든 폭은 됩니다. 방이 크기 때문에 윗목에 책상을 벌여놓아 작업을 하고 아랫목에서 먹고 자는 이른바 숙, 식, 작업의 전 생활이 한곳에서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사화반의 식구도 일곱으로 늘고, 저녁잠만 자러 오는 악대부원 10여 명이 또 이 방의 동숙인입니다. 이것은 실로 이사 이상의 큰 변화입니다. 낯선 것, 서툰 것, 심지어 불편한 것까지 전체로서 신선한 분위기를 이루어 생활에 활력을 불어넣습니다.
이번 이사 때 가장 두고 오기 아까웠던 것은 '창문'이었습니다. 부드러운 능선과 오뉴월 보리밭 언덕이 내다보이는 창은 우리들의 메마른 시선을 적셔주는 맑은 샘이었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창문'보다는 역시 '문'이 더 낫습니다. 창문이 공한 관조의 세계라면 문은 힘찬 실천의 현장으로 열리는 것입니다. 그 앞에 조용히 서서 먼 곳에 착목하여 스스로의 생각을 여미는 창문이 귀중한 '명상의 양지'임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그것은 결연히 문을 열고 온몸이 나아가는 진보 그 자체와는 구별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 해 동안 베풀어주신 형수님의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새해의 발전과 건강을 기원합니다.
1981년 세모에
「신영복, 돌베개 : 창문과 문,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위의 글은 신영복이 통혁당 사건으로 20년간 투옥되어 있으면서 쓴 옥중서간 중 하나이다. 필자의 형수에게 쓴 글이지만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의 사적인 인사말을 제외한다면, 감옥 생활에 대한 단상이 편지의 내용을 이루고 있어 여느 에세이나 다름없다. 감옥에서 방을 옮긴 사건과 그 느낌을 잔잔하게 전달하고 있으나, 그 이면에는 자유에 대한 강한 욕망이 나타난다. "부드러운 능선과 오뉴월 보리밭 언덕이 내다보이는" 창과 "힘찬 실천의 현장으로 열리는" 문의 비유에서 자유에 대한 필자의 안타까운 소망을 읽을 수 있다. 이 자유에 대한 소망은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닐 것이다. 비록 사적인 소통을 위한 옥중서간이지만 깨달음과 감동의 폭이 자연스럽게 확장됨을 확인할 수 있다.
자전적 수필
기억의 편린을 편하고 자유롭게 쓰는 짧은 수필류는 필자 자신의 생애를 되짚어 보고 반성과 감사의 자기표현을 곁들임으로써 유사한 경험을 한 독자들에게 공감을 준다. 성찰적 글이 독자에게 공감을 주려면 주제가 선명하고 소재가 참신한 것이 좋다. 개인의 일상이란 서로 비슷한 면이 많으므로 그 자체로 충분히 설득력이 있지만 또 이 때문에 식상한 소재가 될 수 있다. 소재가 특별하지 않더라도 소재를 긴밀하게 구성하고 깨달음의 깊이를 느낄 수 있게 한다면 좋은 글이다. 나아가 그 글이 시대와 조응할 때 사회와 역사에 대한 성찰로서 더 의미를 지닐 수 있다. 이때 보편타당한 상식을 바탕으로 하여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해석을 취하고 있는지도 함께 살펴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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